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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3대 대첩 한반도에서 적군이 참패한 전투

by Mi1Duck 202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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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쟁사에 기록된 3대 대첩이 있다.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도대첩이다. 적군의 침략을 막고 괴멸 또는 전멸에 가까운 상태로 만든 고구려의 을지문덕, 고려의 강감찬,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승리로 이끌어낸 전투이다.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어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특히 한산도대첩의 경우 영화로도 이미 유명하다.

한국사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3대 대첩
한반도에서 적군이 참패한 전투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전쟁사와 너무 밀접하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한반도 역사에 공룡을 제외하면 속 터질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전쟁사를 보면 공통점이 몇가지가 있다.
공격보다는 방어가 많았다. 국토를 지킨 사람은 민초였다.

유능한 장군 한명이 전황을 뒤집었다.

시중의 책자나 커뮤니티에서 언급되는 우리나라 전쟁사 중 3대 대첩이 있다.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도대첩이다.

한국사의 3대 대첩

대첩이란 단어는 아군이 크게 이겼고 적군은 거의 괴멸까지 간 큰 승리란 단어를 가진다.
한자로는 大捷 ( 大 클 대, 捷 빠르다/이기다 첩 ) 으로 쓴다.

크게 이기다의 의미로 지금은 커뮤니티에서 비유법으로 자주 사용되기도 하는데 주로 국제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승리한 경우에 언급된다.

외세의 침략이 잦았던 우리나라 만큼 한국사는 치열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외세 침략을 막고 크게 승리한 대첩 3가지가 있다.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도대첩이다. 이 중 한산도대첩은 해상전투이다.

  • 살수대첩 / 을지문덕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친 전투
  • 귀주대첩
    강감찬 장군이 거란군 10만 대군을 물리친 전투
  • 한산도대첩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물리친 전투

전쟁사의 보고 있으면 흥미로운 점은 머릿수가 많다고 절대적으로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주변의 상황과 아군과 적군의 상태 모두를 파악하고 이길 수 있는 싸움으로 수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많은 수의 병력과 출중한 장군이 있었다고 해도 상대방에 더 유능한 장군이 있어 패배한 경우들도 있었다.

뭐, 근대사를 보면 대책없는 돌격으로 유리한 병력을 모두 잃는 사태도 있었지만 말이다.

외세를 막고 괴멸 시키다.

대첩은 우리나라에서 외세의 침략을 막고 적군을 괴멸 또는 전멸에 가까운 상태일 때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한국사 3대 대첩이라 불리는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도대첩의 양상이 궁금할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이 3대 대첩 중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이 가장 유명하다.

각 대첩의 조건들을 한번 살펴보자.

꽤 흥미롭다.

살수대첩

612년 고구려 영양왕 23년에 수나라군과 발생한 전투

고구려군이 수나라군을 살수에서 격파

시기 : 고구려 영양왕 23년

병력 : 고구려 10,000 명 / 수나라 305,000명

장소 : 살수 ( 평안북도 청천강 )

장군 : 고구려 을지문덕 / 수나라 우중문, 우문술 등

귀주대첩

1019년 고려 현종 10년에 거란군과 발생한 전투

고려군이 거란군을 구주에서 격파

시기 : 고려 현종왕 10년

병력 : 고려군 200,000명 / 거란군 100,000명

장소 : 구주 ( 평안북도 구성시 )

장군 : 고려군 강감찬 / 거란군 소배압

한산도대첩

1592년 선조 25년에 일본 수군과 발생한 전투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을 한산도에서 격파

시기 : 조선 선조 25년

병력 : 전선 55척 ( 거북선 3척 , 판옥선 52척 ) / 전선 73척

장소 : 견내량 전라남도 통영 한산도 앞바다

장군 : 조선수군 이순신 / 일본 수군 와키자카 야스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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